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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2020/avec17

[옐조] 수영이는 수영을 못 해!

[옐조] 수영이는 수영을 못 해!

- 김죠수

 

 

 

 주의: 심장병 소재, 트라우마

 

 

 

 

 

 

 예림은 물이 좋았다. 어릴 때부터 물이라면 사족을 못 썼다. 그 시작은 아마도 인어공주를 읽고부터였던 것 같다.  다른 또래들의 환상의 끝에 무슨 랜드니 무슨 월드니 하는 놀이동산이 들어서 있다면 예림의 꿈의 동산에는 워터파크가 버젓이 들어서 있었다. 그 옆에는 넓은 바다도 있었다. 우리 예림이는 물개로 태어났어야 했나 보다. 예림의 엄마가 입술이 시퍼레지도록 물속에서 나오지 않던 예림을 끌어올리면서 항상 하던 말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동네 수영장에 등록해서 수영을 배우러 다녔다. 아침에 엄마가 학교 가야지, 하면서 깨우면 안 일어나지는데 오늘 수영 가는 날이네, 하면 몸이 물에 뜬것처럼 가벼워서 스프링에 튕겨지듯 벌떡 일어나졌다. 또 나름 재능도 있는건지 자유형이면 자유형, 배영이면 배영, 평형까지 곧잘 배웠다. 무슨 코치 출신이라던 선생님이 예림을 보며 항상 하던 말이 있었다. 이제 예림이는 숨만 더 오래 참을 줄 알면 되겠다. 예림은 다 좋은데 남들보다 폐활량 느는 게 더뎠다. 예림은 남들 다 처음부터 그런 건 줄 알고 살았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남들이 한번 숨 쉴 때 똑같이 숨을 쉬면 예림만 숨이 넘어갈 듯 숨을 몰아쉬었다. 그래도 수영만 잘하면 됐지. 하고 넘기기엔 늘어야 하는 게 오히려 점점 주는 것만 같았다. 결국 접영을 배우기 직전, 중학교에 들어가기 바로 전 겨울에 예림은 물속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 수영은 그만두는 게 좋겠다.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싫다고, 내가 왜 그래야 하냐고 울고 불던 예림은 곧 자의로 수영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샤워를 하는데 그 물줄기 속에서 잠깐 숨을 참는 게 두려웠다. 그토록 좋아하던 물이 무서워진 것이다. 퇴원한 날 밤 거실에서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다. 우리 예림이가 불쌍해서, 미안해서 어쩌냐고. 예림은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울었다. 심부전, 겨우 이깟 세 글자가 예림이 늘 남보다 숨이 모자랐던 이유였고 수영을 그만두게 된 이유였다.

 

 

 

 

 

 

 

*

 

 

 

 

 

 

 

 예림은 한동안 수영이란 걸 잊고 살았다. 원래부터 그런 건 예림의 인생에 없었던 것처럼. 수영을 다니던 그 시간에 영어 학원을 다니고 다른 애들처럼 공부를 했다. 현장체험학습으로 놀이공원을 가니 워터파크를 가니 조사를 하면 놀이공원에 동그라미 치고, 엄마 싸인을 대충 흉내 내서 반장한테 줬다. 가서도 신나게 롤러코스터를 타고 동물 머리띠를 쓰고 웃으면서 사진 찍었다. 중학교 때는 그럴 수 있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고부터는 그러기가 힘들었다. 체력 싸움이라는 입시는 예림의 몸도 마음도 갉아먹었다. 계단을 한 층만 올라도 숨이차서 한시간 정도는 멍 때려야 했다. 그래서 선생님한테 엘리베이터를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을 정도였는데, 자존심 때문에 그냥 올라 다녔다. 덕분에 0교시부터 2교시까지는 드러누워 잠만 잤지만. 그 쯤부터 예림은 막연히 생각했다. 나는 미래를 생각하기보다 지금을 즐기는게 나은 것 같다고. 그래서 공부도 놨다. 그럭저럭 나오던 모의고사 점수가 뚝뚝 떨어져도 마음속으로 불안해하기만 하고 할 마음은 안들었다. 부모님 역시 변한 예림을 보면서도 별다른 말을 얹지 않았다. 수능이 어영부영 지나가고 예림은 생각도 않던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평생을 수학 익힘책=라면 익힘책 이라는 공식을 새기고 살던 예림에게, 회계원리니 경제학이니 하는 것들은 싫증이 곰팡이처럼 마구 피어서 번지게 했다. 거기다가 많이 마시지는 않았지만 새내기니 술도 마시고 가뜩이나 체력이 엉망인데 흥청망청 놀고 다니니까, 고층 수업을 연강 때문에 계단을 막 뛰어오르다가 다시 쓰러져 버렸다.

 

 

 

 흰 천장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다 그만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제가 태풍 부는 날 밖에 세워진 입간판도 아니고 뭐만 하면 픽픽 쓰러지는 게 어이가 없고 싫었다. 수술을 권하는 의사에게도 부모님에게도 동생들에게도 단호히 거절의 말을 놓았다. 예림은 대신 퇴원하고 할머니가 계신 남해로 가기를 택했다. 학교는 중도 휴학을 신청해놨고, 다시 쓰러지니 잊고 있었던 것들이 생각났다. 부모님은 가서 여유를 가지고 생각해보라고 했지만, 예림은 바다를 보면서 기타나 띵가띵가 치다가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로 점철된 끝이라면 억울해하지 않고 받아들일만할 것 같았다. 예림은 기타를 등에 메고 캐리어 하나를 질질 끌고 남해로 향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기타를 들고 바다에 갔다. 초크를 두어번 빠뜨리고는 그냥 손으로만 쳤다. 여름은 금방 찾아와 햇빛도 쨍했고 사람도 북적였다. 기타를 내려놓고 튜브와 함께 둥둥 떠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으면 예림은 갈증을 느꼈다. 수영하고 싶다. 나도 수영할까. 그 갈증은 곧 해소되어야만 했다. 예림은 그 주말을 보내고 오랜만에 물에 발을 담갔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울렁거렸는데 어느 순간 제 삶처럼 포기가 됐다. 예림은 바다에서 맨몸으로 헤엄쳤다. 조끼도 튜브도 없이. 누군가 본다면 기함할 일이겠지만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하루하루 예림은 더 깊은 곳으로 향했다. 물속에 있으면서 예전과 같은 설렘을 느꼈을 때, 그 두근거림이 설렘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무언가 잘못된 걸 깨닫기에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예림은 숨도 쉬지 못하고 그대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볕이 내리쬐는 물 밖을 보면서, 푸르다고 생각했던 바다가 컴컴해 보이면서 예림은 생각했다.

 

 

 

 다시 태어나면 돌고래로 태어나고 싶다.

 

 

 

 

 

 

 

*

 

 

 

 

 

 

 

 돌고래는 부럽다. 다음 생엔 내가 고래나 돌고래였으면 좋겠어. 헤엄만 치고 살 수 있잖아. 사실 해파리만 돼도 좋을 것 같아. 해양생물이면 뭐라도 좋아. 생각해보니까 아귀는 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걔네도 먹이를 찾아 헤매야 되는 게 싫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음, 막상 내가 걔네였다면 또 물 밖에서 걸어 다니고 싶었을 거야. 뭐라고? 더 크게 말해봐. 물속이라 잘 안 들려. 일어나라고? 무슨 소리야.

 

 

 

 지금 너랑 얘기하고...

 

 "야, 정신 차려!"

 

 

 

 예림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이며 코며 귀가 매워서 콜록거렸다. 가슴도 얻어맞은 것처럼 시큰했다. 나 안 죽었나 봐. 예림은 기침을 하다가 등을 두드리는 손길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여자가 예림을 약간은 걱정스럽게 약간은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누, 구, 켁."

 

 "나? 네 생명의 은인."

 

 

 

 너 나 아니었으면 죽었어. 여자는 팔짱을 끼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걸 고마워해야 하나? 어차피 죽을 거 어디 막혀있는 곳도 아니고 물 속인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예림의 시큰둥한 반응에 여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반복했다. 너 방금 죽을 뻔 했다니까?

 

 

 

 "안 구해줬어도 죽었어요."

 

 

 

 거 참, 고맙다는 말이 그렇게 하기 싫니? 특이한 인간이네. 여자는 기가 차다는 듯 웃었다. 나보다 그쪽이 더 특이한 것 같은데. 비말의 매운 기가 가시고서야 예림은 주위를 둘러봤다. 모래사장과도, 예림이 늘 혼자 기타를 둥당거리던 구석진 바윗가와도 한참은 먼 바다 가운데였다. 안전부표 너머에 있는 조그만 암초. 사람들이 조금 큰 점으로 보였다. 아득하다는 말이 조금 어울릴 정도의 거리였다.

 

 

 

 "여기에 어떻게 왔어요?"

 

 "응? 음, 난 너랑 달라서 수영을 잘 하거든. 이름도 수영이야."

 

 

 

 안 물어봤는데.. 예림은 특이한 쪽은 저쪽이 맞다고 확신했다. 이상한 여자는 순식간에 바다에 몸을 던졌다. 곧 고개를 내밀고 손으로 얼굴에 묻은 물을 쓸면서 소리치듯 말했다.

 

 

 

 "갈 거야? 그럼 데려다줄게."

 

 "올라와요. 위험해요."

 

 "나만 믿어."

 

 

 

 그러더니 손을 뻗었다. 한참 멀어서 닿지도 않을 거리인데. 수영의 그 큰 눈이 담고 있는 자신감은 왠지 모를 신뢰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발을 담그면서 무섭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언가 발을 확 잡아당겨 빠져버렸다. 수영은 바닷속에서 긴 머리를 휘날리며 날고 있었다. 예림은 맞잡은 손에 이끌려 숨이 차는 줄도 모르고 물살을 거슬러 갔다. 예림이 짠 눈을 겨우 떠 본 수영의 모습은 마치 인어 같았다. 예림이 갑자기 버둥거리자 수영이 예림을 끌고 올라갔다.

 

 

 

 "뭐해? 수영도 못 하면서."

 

 "아니, 당신, 뭐, 아니.."

 

 

 

 수영은 방금까지 잠수를 했으면서 조금도 숨을 고르지 않았다. 이렇게나 짠 물에서 눈을 잘만 떴고, 다리만으로 수영을 했다. 뭔가 이상했다. 수영은 예림의 말을 듣도 않고 물 밖으로 양 팔을 마구 흔들었다. 당신 뭐냐고. 구해줘도 뭐라고 하는 애는 처음이네, 또. 인어라도 돼? 눈치는 빠르네? 수영은 예림의 말에 한마디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다르다는 말이 그렇게 다르다는 거였냐고. 세상에 어떻게 인어가 있는 거냐고.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 거기 넘어가시면 안돼요!

 

 

 

 수상구조 대원이 물에 뛰어듦과 동시에 예림의 옆으로 물이 참방, 튀었다. 잘 가. 수영은 온데간데없었다.

 

 

 

 

 

 

 

*

 

 

 

 

 

 

 

 씻으며 보니 인어가 심폐소생술이라도 한 건지 왼쪽 가슴께가 멍으로 시퍼렜다. 바다랑, 물이랑 같은 색이었다. 심장이 나 여기 있으니까 네 맘대로 굴지 말라고 소리라도 치는 것 같았다. 예림은 한번 가볍게 한숨을 쉬고 멍이 든 가슴께를 퍽 쳤다. 그럼 니도 할 일 좀 제대로 하라고. 그리고는 아파서 입을 벌리고 발을 동동 굴러야만 했다. 할머니가 주무셔서 찍 소리도 낼 수 없었는데 입을 틀어막으니까 눈물이 찔끔찔끔 났다. 너무너무 아팠다.

 

 

 

 예림은 날이 밝고 기타도 메지 않은 채 쪼리를 찍찍 끌고 바다로 향했다. 환불이라도 하러 가는 듯 비장한 걸음으로. 모래사장을 밟자마자 발과 발가락 사이에 모래가 감겨왔다. 예림은 아침부터 만만치 않은 인파를 보고 나서야 제가 땀을 흘리는 줄 알았다. 일단 오긴 왔는데 뭘 어떻게 해야 인어를 다시 볼 수 있는 거지. 예림은 그저 해안선을 따라 걷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안전부표 너머는 멀어서 암초가 있는지 없는지도 보이지 않았다. 예림은 모래사장 끝 쪽, 아무도 없는 이끼투성이의 바위 위에 올라가서 털퍼덕 앉아버렸다. 선크림도 안 발랐는데, 피부가 뜨거워서 익는 게 느껴져도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물속에 들어가 볼까도 했는데, 다시 빠지고 나니까 혼자 물 속에 들어가는 게 망설여졌다. 예림은 무릎을 끌어안고 있다가 꾸벅꾸벅 졸았다.

 

 

 

 "안녕?"

 

 

 

 인기척이 느껴져서 고개를 들었을 땐 옆에 수영이 앉아있었다. 예림과 똑같은 자세로. 얘는 왜 눈 감고 있을 때만 와. 예림은 그래도 내심 반가웠다. 자기가 인어라는 제정신 아닌 생명의 은인이. 무료한 자발적 시한부 생활에 말상대라도 되어 줄 것 같아서.

 

 

 

 "왜 안 들어오고 여기 있어?"

 

 

 

 수영할래? 수영은 도무지 예림의 대답을 들을 생각이 없는 사람 같았다. 예림은 수영의 손에 이끌려서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한 손으로 수영을 하는 건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는데, 수영에게 한 손을 붙잡혀있어도 수영은 예림은 잘만 끌고 갔다. 순식간에 안전부표 앞에 있게 된 예림은 아무렇지 않게 선을 넘어가는 수영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수영은 예림에게 넘어오라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나 못 믿어? 그럼 어제 처음 본 사람을 퍽이나 믿겠다. 예림은 그 말을 속으로 꾹 삼키고 몸을 숙여 넘어갔다. 안전요원의 눈을 피해서 간간이 잠수도 해면서 어제 수영을 차음 만난 바위에 도착했다. 확실히 이 주변이 깊긴 깊은지 바닷물의 색이 달랐다. 몸이 좀 차가워진 것 같아 바위에 올라앉았는데 수영은 계속 물속에 있었다. 수영은 자기는 바깥이 더운 건 알아도 물속이 차가운 건 잘 모른다고 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수영을 잘 해?"

 

 "나?"

 

 "나도 나름 물속에선 무법잔데."

 

 "아니, 나는 인어라니까?"

 

 

 

 그런데 너 왜 반말하냐. 수영이 예림에게 물을 튀겼다. 예림은 그래도 진지한 얼굴이었다. 장난하지 말고. 장난 아니야. 수영은 예림보다 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조금 기분이라도 상한 것 같이.

 

 

 

 "그런데 너는.. 지느러미도 없고, 아가미도.."

 

 "내가 나 인어랬지 물고기라 했니?"

 

 

 

 듣고 보니 그건 그런데, 예림은 제정신 아닌 컨셉충인 새 친구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기도 했고 이게 진짜였으면 좋겠기도 했다. 그래 너 인어 맞아. 하고 예림은 벌렁 누워버렸다. 수영은 예림을 몇 번 부르더니 예림의 옆으로 기어 올라왔다. 너 웃기다. 네가 더 웃겨. 그런데 왜 반말하냐니까. 너는 왜 하는데. 내 맘. 나도 내 맘. 진짜 특이한 인간이다 너. 너 아니고 예림이야. 너 진짜 특이한 인간이다 예림아. 수영은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실실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자기는 인간이 아니기라도 한 것 마냥. 예림은 이제 매일 기타를 찾지는 않았으나 매일 수영을 찾아 바다를 찾았다. 만나면서 드는 생각은 얘가 진짜 인어가 맞나 보다, 하는 거였다. 딱 봐도 아주 깊숙한 곳까지 내려가기도 하고, 예림이 숨을 스무 번 쉴 동안 단 한 번도 물 밖에 안 나오기도 하고. 그래서 예림은 인어인 친구가 생겨버렸다. 예림은 수영 덕분에 매일 수영할 수 있었다. 문득 물이 무서워지면 수영은 어떻게 알고 손을 뻗었다. 또 빠지면 구해줄게 내가. 예림은 조금 설레는 것도 같았다. 수영이 그렇게 말할 때면 안 빠질 거거든. 하고 발로 물을 한번 튀기면서 물속에 몸을 던졌다. 예림은 수영과 헤어지고 집에 가서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이렇게만 살 수 있으면 돌고래로 안 태어나도 좋겠다. 수영을 만난 뒤로는 웬일인지 밤에 숨이 막힌다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거기다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나라의 어린이가 되었다. 나 좀 나아지고 있나 봐. 예림은 이제 해양 동물이 되어 바다를 헤엄치는 꿈 대신 수영과 함께 헤엄치는 꿈을 꾸곤 했다.

 

 

 

 

 

 

 

*

 

 

 

 

 

 

 

 유인원이 육지에서 살기를 택했는지, 해양에서 살기를 택했는지에 따라 각각 인간과 인어로 진화한 거라고 한다. 그러니까 결국은 인간과 똑같은 만큼의 진화할 시간이 인어한테도 있었다는 거고, 그래서 고대의 인어는 아니었을지라도 지금의 인어는 인간과 같은 모습을 하게 된 거라고. 그러니까 지느러미도 아가미도 없다고. 수영은 열변을 토했다. 왜 안 믿냐구. 아니, 믿는다니까? 거짓말하지 마. 내가 너 안 믿은 적 있어? ... 있으면서. 수영은 꿍얼거렸다. 예림이 전 날 수영을 너무 오래 해서 늦게 일어난 날, 수영은 노을에 물들어 사람이 빠져나간 모래사장에 나와서 모래성을 만들고 있었다.

 

 

 

 "왜 나와있어?"

 

 

 

 예림은 발에 감겨 푹푹 빠지는 모래를 차내며 수영에게 달려갔다. 수영은 왔어? 하고 여느 때처럼 웃었다. 너 친구 없어? 인어 친구들하고 놀고 있지. 예림은 미안해져서 괜히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너도 인간 친구 없잖아. 나는 있긴 있어. 그래? 나는 너밖에 없어. 수영의 말에 뒤통수가 얼얼해진 것 같은 예림은 역시 입은 함부로 놀리면 안 되는 거라고 계속 후회했다. 수영이 없었다면 입을 열 번 정도 때렸을거다. 오늘 밤에는 이불을 마구 발로 찰 것 같고.

 

 

 

 "산책이라도 하고 있지."

 

 "나 걸어본 적 없어."

 

 "그래? 그럼 내가 가르쳐줄게."

 

 

 

 인간과 인어가 다른 점이라면 당연히 인간은 헤엄에 서투르다는 거고 인어는 걷는 게 서투르다는 것이다.  수영은 고개를 돌려 예림을 빤히 보더니 너 좀 멋있네? 하고 웃었다. 뭐가? 예림이 되묻자 수영은 그냥 더 추워지기 전에 수영이나 조금 하고 가라고 했다. 너는 추운 거 모른다며? 네가 춥다고 하잖아. 바위 위에서 수영이 먼저 풍덩, 예림은 수영이 떠오르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수영이 도통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파도가 치지도 않는데 수영이 빠진 곳에서 올라오는 기포에 예림은 불길함을 느꼈다. 야, 뭐해? 장난치지 마. 예림이 급하게 물에 뛰어들었다. 수영은 잔뜩 당황한 얼굴로 가라앉고 있었다. 예림은 놀라고 무서워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는데도 수영의 손을 잡으려고 밑으로 헤엄쳤다. 아드레날린 덕분일까, 말도 안 되게 수영을 건져올리고 예림은 바위에 널브러져서 콜록거렸다. 수영은 계속 멍한 얼굴이었다.

 

 

 

 "야, 너는 무슨 그런 장난을."

 

 "예림아."

 

 

 

 나 무서웠어. 대부분의 인간에게 걷는 것이 당연하듯 인어에게는 헤엄칠 줄 아는 게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숨 쉬는 법을 까먹은 것처럼, 어딘가 고장 난 느낌이었다고 한다. 다리가 움직이질 않아서 가라앉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도 수영은 예림을 만나러 올 때도 멀쩡하고 예림과 헤어져도 다시 헤엄칠 수 있는데 예림만 만나면 수영하는 법을 까먹는다고, 이상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영이 예림에게 네가 빠져도 못 구할까 무섭다고 한 뒤로는 둘 다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예림이 기타를 가져와 노래 부르면서 놀았다. 수영은 처음 기타를 봤을 때부터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예림에게 계속 연주해달라고 했다. 독학인데다가 수영을 만나느라 연습도 못해서 같은 코드를 반복해서 치는 게 다였지만 수영은 굉장히 좋아하는 눈치였다.

 

 

 

 "집에 가족만 없었어도 밤에 연습해서 오는 건데."

 

 "가족?"

 

 

 

 독립적인 개체라 태어나는 순간부터 혼자라는 인어에게 가족을 설명하기란 힘들었다. 대충 소중한 거라고 얼버무렸는데 그러면 너랑 나도 가족이냐는 수영에 예림은 갑자기 목구멍이 탁 막혔다. 예전에 물에 빠졌을 때처럼. 너랑 나는... 친구라는 말이 분명 머릿속에 있었음에도 그렇게 말하기가 싫었다. 일단 가족은 아니야. 그럼 뭔데? 몰라, 나도. 예림은 또 벌렁 누웠다. 너는 할 말 없으면 자꾸 드러눕더라. 수영도 예림을 따라 벌렁 누워서 하늘을 봤다. 그러게 수영과 저는 뭘까. 예림은 울렁거림을 느꼈다.

 

 

 

 

 

 

 

 *

 

 

 

 

 

 

 

 새벽 내내 예림은 호흡곤란에 시달렸다. 어제 괜히 울렁거린 게 아니었던 건지 도저히 숨을 못 쉬겠어서 응급실에 가기까지 했다. 부모님이 내려오면 끌고 올라갈까 봐 온다는 걸 겨우 말리고, 할머니의 간호 하에 예림은 맛대가리 없는 병원밥을 억지로 삼키면서 매일 수영 생각만 했다. 못 간다고 말도 못 하는데. 기다리고 있겠지? 아득바득 우기면서 나가려고 해도 소중하다는 가족은 예림을 방해만 했다. 왜 그러는지는 알겠는데 답답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병원에서 도망치듯 퇴원한 예림은 바다에 돌아갔다. 수영은 한참이 지나도 나타나질 않았다. 수영은 해가 다 지고 나서야 나타났다. 수영도 예림도 서로의 안부에 대해 묻지 않았다. 딱 봐도 서로 엉망인 걸 알아서. 한마디도 않고 앉아만 있다가 안녕, 하고 헤어졌다.

 

 

 

 다음날 예림은 기타를 가지고 수영을 찾았다. 해가 중천에 있을 때 만났음에도 예림은 기타를 치지 않았고 둘은 대화하지 않았다. 노을에 물들어가는 바다를 보면서 수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제 너 없을 때 또 죽을뻔했다고.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 치고는 오히려 신난 얼굴이었다.

 

 

 

 "너랑만 있으면 계속 이래."

 

 "그래서 싫어?"

 

 

 

 괜히 물어봤다. 당연히 싫겠지. 예림은 이상한 질문을 한 스스로가 짜증 나서 허벅지를 꼬집었다.

 

 

 

 "잘 모르겠어."

 

 

 

 잘 모르겠으니까 계속 같이 있으면 안 돼? 응?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얼굴이 너무 가까웠다. 예림은 놀라서 고개를 뒤로 쭉 빼고 있는데 수영은 멀어질 생각이 없었다. 예림이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서 눈을 봤다가 바다를 봤다가 코를 봤다가 저기 떨어져 있는 부서진 조개껍데기를 봤다가, 입술을 봤다가...

 

 

 

 "악! 뭐 하는 거야 갑자기!"

 

 

 

 수영의 입술이 예림의 입술에 짧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예림이 기겁을 하면서 소리치자 수영도 놀라서 어깨를 흠칫 떨었다.

 

 

 

 "왜? 이거 아니야?"

 

 

 

 인간들 꼭 이 시간에 이렇게 앉아서 이런 거 하던데.. 수영은 정말 자기가 잘못한 건 줄 아는지 눈썹을 늘어뜨리고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할 건 또 아닌데. 예림은 머쓱해졌다. 아니 나도 뽀뽀하고 싶긴 했던 것 같은데. 심장이 쿵쾅거리는 게 느껴졌다. 씨, 갑자기 제 들숨과 날숨이 의식되기 시작했다.

 

 

 

 "야."

 

 "어?"

 

 "아니야, 암튼 아니야 그거."

 

 "아니면 아닌 거지 왜 화를 내?"

 

 "... 화 안 냈어. 이거 다른 사람한테 하면 안 돼."

 

"알겠어."

 

 

 

 그런데 어차피 나는 너밖에 없어. 예림은 저를 바라보는 수영의 시선을 피해 바다만 바라봤다. 그리고 왜 사람들이 이 시간에, 이렇게 앉아서 뽀뽀니 키스니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얼굴 빨개지는 거 티 안 나겠지? 예림은 아까 전 햇빛에 익은 건지 노을에 물든 건지 모르겠는 볼에 손등을 댔다가 바닥에 손을 짚는 척 은근슬쩍 수영의 손 위에 제 손을 겹쳤다. 자신보다 한참 차가운 수영의 손을 또 한참 잡고, 수영은 자신보다 한참 뜨거운 예림의 손에 또 한참을 잡혀있었다. 그리고 한참을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가 헤어졌다.

 

 

 

 

 

 

 

*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다. 예림의 상태는 누가 봐도 호전되고 있는 편이 아니었기에 부모님의 걱정 섞인 재촉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예림아 결정할 때가 되지 않았니. 예림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이제는 수술을 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보다 수술하는 동안 수영을 못 본다는 게 문제였다. 사실 문제는, 매일같이 전화로 들들 볶아서 알겠다고, 수술한다고 해버린 게 문제였다. 이미 말을 해버린 이상 뒤집을 수 없는 일이 돼 버렸고. 예림은 수영이 저한테 꼭 붙어서 볼에 뽀뽀를 할 때마다 울고 싶었다. 예림이 웃을 때마다 입꼬리가 미세하게 달달 떨리는 걸 눈치 빠른 수영이 모를 리가 없었다. 무슨 일 있어? 수영이 물어도 예림은 무슨 일 있는 티를 팍팍 내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예림이 이런 고뇌에 빠진 동안 수영도 아무런 추론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수영을 못 하는 인어라니. 분명 뭔가 문제인 걸 테니까.

 

 

 

 "수영할까?"

 

 

 

 마지막으로 같이 물에 들어간지는 벌써 한 달도 더 됐었다. 수영은 예림을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에라도 들어가면 열받은 머리가 조금이라도 식을까 봐. 예림은 먼저 들어간 수영이 고개를 내미는 걸 확인하고 조심히 물속에 들어갔다. 수영은 방금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 예림에게로 천천히 헤엄쳐오더니 다짜고짜 뽀뽀해달라고 했다. 갑자기? 여기서? 예림이 먼저 뽀뽀한 적은 없어서 입술만 꿈질거리고 있으니까 수영이 목에 팔을 감고 입술을 쪽, 하고 부딪혔다. 그러자마자 수영의 몸에 힘이 들어가고, 예림에게로 체중이 실렸다. 그리고 수영은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어, 어. 예림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수영은 벌써 빠져서 머리까지 물속에 들어갔고, 저도 붙잡혀있어서 뭘 할 수가 없었다. 어떡해. 예림은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안돼. 안되는데. 예림은 수영의 팔을 풀어내고 고개만 간신히 내밀었다. 살려주세요.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살려줄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 밖에 없었다. 예림은 수영의 팔을 꽉 잡고 심장이 터져라 헤엄쳤다. 무슨 정신으로 다시 바위까지 올라왔는지 모르겠다. 올라와서 수영까지 끌어올리고 보니 예림은 손톱에서 피가 줄줄 나고 있었고 수영은 다리가 쓸려서 허연 다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예림은 수영이 물을 뱉어내는 걸 보고 나서야 정신이 들어서 눈물이 펑펑 나왔다.

 

 

 

"다시는 수영하자고 안 할게."

 

 

 

 미안해 수영아. 예림은 어린애처럼 주먹으로 눈물을 닦았다. 수영은 아까처럼 예림을 당겨와서 입술에 뽀뽀했다. 안 죽었는데 왜 울어? 이번엔 예림이 먼저 수영의 입술에 제 입술을 갖다 댔다. 뽀뽀보다는 훨씬 길었다. 첫 키스는 눈물까지 섞여서 바닷물보다 짰다. 바닷물의 비린내도 났고 서로의 손과 다리에서 올라오는 피비린내도 났다. 입술이 떨어지고 예림은 혼자 숨이 차서 헉헉댔다. 예림은 이제서야 부끄러워져서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이 사고뭉치 심장은 이럴 때도 제 기능을 못해서 나를 변태처럼 만들어 버리네. 수영이 예림의 이름을 불렀다. 예림아, 나 안 것 같아. 아씨, 쪽팔린데 왜 불러, 싶어 고개를 돌리고 있던 예림의 손을 수영의 손이 채갔다. 그리고 손을 제 가슴께에 가져다 댔다.

 

 

 

 "이건가 봐."

 

 

 

 예림이 기겁하면서 악 소리를 내며 손을 떼려 하니까 수영이 검지를 세로로 가져다 댔다. 네 입에다 하지 왜 내 입에다 하니. 예림은 또 부끄러워서 울고 싶었다.

 

 

 

 "가, 가슴이 뭐?"

 

 "아니, 가슴 말고."

 

 

 

 심장 뛰니까 수영 못 하겠다구.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원래 혼자 있으면 이렇지 않단 말이야. 근데 너랑 있으면, 심장이 빨리 뛰어. 심장이 빨리 뛰니까 다리가 안 움직여. 예림은 갑자기 뇌까지 피가 확 도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인어가, 수영이가 나를 좋아해서 수영을 못한다고? 진짜? 이게 말이 돼? 인어도 있는데 말이 안 되는 게 어딨어. 그런데 왜 하필. 아. 어떡하지. 예림은 갑자기 더럭 책임져야 할 사람이 생겨버렸다. 예림은 수영 때문에 살고 싶어졌는데 수영 때문에 살아야만 하는 것도 됐다. 제 삶이 소설이나 드라마 같았다. 예림은 또 눈물이 찔끔 났다. 예림아 너 의외로 울보구나. 자존심은 상하는데 눈물은 곧 줄줄 흘렀다. 그런데 수영아 어떡하지. 수영은 예림이 코까지 흘리면서 하는 말을 진지하게 다 들어줬다. 그래서 나는 잠깐 가야 돼. 수영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장난스레 말했다. 그거 가지고 왜 울어?

 

 

 

 "나 버릴 거야?"

 

 "아니, 아니야. 버리는 거 아니야. 그런 말 하지 마."

 

 

 

 예림이 제 장난에 유독 예민한 건 알고 있었는데. 잉잉 울면서 또 장난으로 못 넘기는 게 귀여웠다. 수영은 예림의 볼을 꼬집었다. 꼬집고 안 놔줬다. 예림은 울다가 다 뭉개진 발음으로 아프니까 놔달라고 했다.

 

 

 

 "내가 꼭 나아서 면허 따고 올게."

 

 

 

 면허가 뭔데? 있어, 암튼 알겠지? 알겠어. 꼭 와야 돼? 응 금방 올게. 

 

 나 그거 한 번만 해줘. 뭐? 뽀뽀 말구. 어? 응.

 

 

 

 

 

 

 

*

 

 

 

 

 

 

 

 그렇게 예림은 수영과 얼레벌레 헤어졌다. 집에 와서 엄마한테 내일 올라간다고 전화를 하고 나서도 실감이 안 났다. 마취주사를 놓으면서도 그랬다. 예림은 헤어지면서 수영이 건네줬던, 예림의 앞니 하나만 한 진주를 손에 꾹 쥐면서 어렴풋이 파도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수술은 성공적이라고 했다. 예림은 또다시 맛대가리 없는 병원 밥을 마주했을 때서야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아무 맛도 안나는 죽 같은 걸 씹으면서 으아아 하고 우니까 병문안 온 동생이 예림이 언니 미쳤다고 엄마를 부르러 달려갔다. 사실 무서웠다. 심장 열었다 닫는 게 어디 쉽나, 무슨 마징가제트도 아니고. 그런데 내가 잃을 수영이보다 내가 잃어선 안될 수영이가 더 커서 안 울었던 거였다. 수영은 못 하더라도 수영이를 못 볼 순 없었다. 예림은 자다가도 울었다. 2인실을 같이 쓰는 아저씨의 코골이에도 서러워서 울었다. 수영이는 코 고나? 수영이 보고싶다. 사진이라도 하나 찍어 놓을걸. 어떻게 사진 한 장을 안 찍었지. 평소에 사진 찍는 거 좋아하면서 어쩜 수영의 존재를 한 군데도 담아놓지를 않았다. 이게 다 거짓말이었으면? 도움 하나 안 되는 심장이 만들어낸 허상이었으면? 예림은 그럴 때마다 진주를 꾹 쥐는 게 다였다. 이러다가 경과가 잘못되면 수영을 담아놓은 건 제가 전부인데 그런 제가 사라질까 봐, 그러면 수영이 영영 잊힐까봐 눈물을 꾹 참았다. 퇴원하자마자 면허 따야지. 면허 따고 수영이 찾아가서 사진부터 찍어야지. 그래, 사진이 없으면 찍으면 되는 거야.

 

 

 

 그런데 그게 일 년이나 걸렸다. 여름이 다시 찾아올 때까지 예림은 수영을 잊지 않았다. 진주는 목걸이로 만들어서 하고 다녔다. 친구들이 네 나이 스물하나에 무슨 진주 목걸이, 라고 해도 예림은 어쩔레미오. 하고 말았다. 예림은 이제 연강 때문에 계단을 뛰어올라야 할 때도 주저하지 않았다. 한 7층 정도 뛰어 올라가면 헥헥 거리긴 했어도, 이건 누구나 숨찬 거니까. 이제는 운동도 할 수 있었다. 수영은 일부러 해보지 않았다. 수영이랑 해보려고. 여름이 되자마자 예림은 그때 가져갔던 캐리어 하나랑 새 기타를 하나 들고 김해로 내려갔다. 예림은 짐도 풀지 않고 바다로 뛰어갔다. 운동화 안으로 모래가 잔뜩 들어가서 무거웠는데도 그냥 뛰었다. 그 바위는 이끼가 더 껴서 더 더 미끄러웠다. 바위 끝에 서서 막 소리를 질렀다. 야, 박수영. 수영아. 나 왔다. 예림이 왔다. 시간이 지나도 수영이 나타나지 않았다. 내심 두려웠다. 수영이가 나 말고 다른 애랑 뽀뽀했으면 어떡해.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번엔 또 화가 나서 기타를 꺼내서 일렉처럼 좡좡좡 쳐댔다. 손톱이 쓸려서 아파도 계속 쳤다.

 

 

 

 "왜 이렇게 늦었어?"

 

 

 

 수영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예림은 떠밀려서 물속으로 떨어졌다. 이거 비싼 기탄데. 기타고 뭐고 제 옆으로 풍덩, 빠지는 무언가 때문에 심장이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푸학. 예림이 허우적거리며 물 위로 올라갔다. 바로 옆으로 똑같이 올라오는 한 사람. 예림은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수영이다. 예림이다. 수영은 예림의 말투를 멍청이처럼 따라 했다.

 

 

 

 "너 아직도 나 사랑해?"

 

 "응."

 

 

 

너는? 수영의 입술과 예림의 입술이 맞닿았다. 혀처럼 손가락과 손가락도 얽혔다. 예림은 수영의 손을 예전의 수영이 그랬듯 제 가슴께로 가져갔다. 예림이 살짝 눈을 떴을 때 수영의 올라간 입꼬리가 보였다. 너랑 하는 키스가 아무리 소금 덩어리를 삼키는 것 같더래도 나는 평생 할 수 있어. 네가 수영을 못 하면 내가 하면 되지. 둘 다 수영을 못하면 걷자. 기타도 평생 쳐줄게. 사랑해. 수영의 체중이 예림에게 실렸다.